딸아이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날들

2019. 12. 7. 04:17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복음 간증

일본 양위칭(杨雨晴)

  저는 중국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16살에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도시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17살이 되던 해에 전남편을 만났는데, 저보다 12살이나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아버지처럼 저를 보살펴 주었고, 오빠처럼 사랑해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만난 것이 제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의 어머님께서 특별히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저는 어머님도 저를 보시면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는 제가 젊고 예쁜 데다 나이도 훨씬 어리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제가 딴 마음을 품고 자기의 아들을 만나고 있는 줄로 의심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제 앞에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얘가 딴 맘을 먹을까 봐 두렵지 않니?” 그 말을 듣자 저는 마음이 몹시 상하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을 때, 남편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우리를 떼어 놓으시려거든 지금 당장 돌아가세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늘 온화하기만 했던 그가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기 어머니께 화를 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동스러웠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에 대한 남편의 진실한 사랑이라고 여겼고,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음에도 저는 남편에게 딸아이를 낳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늘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면서 몇 년 동안 어렵게 저금해 놓은 돈을 도박판에서 다 날리고 빚까지 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돈을 벌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도록 돈을 벌어도 남편이 미친 사람처럼 도박판을 전전하다 보니 제가 버는 돈은 남편이 쓰기에도 항상 모자랐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말다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저는 짐을 싸고 집을 나왔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데리고 그 고통스러운 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남편은 아이를 저에게 주지 않았는데, 20만 위안을 가져와야 아이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20만 위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아이에게 새엄마가 생기면 아이가 구박받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 아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좋은 학교에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년간 일을 하지 못했던 저는 그렇게 많은 돈을 쥐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죽도록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쯤 저의 어머니와 언니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는데, 저에게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 보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루빨리 20만 위안을 벌어 딸아이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하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매번 복음을 거절하고, 돈을 버는 데에만 온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20만 위안을 모아 아이를 찾으러 갔을 때, 전남편은 또 다른 핑계를 대며 50만 위안을 가져오면 아이를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딸아이를 데려오지 못한 저는 날마다 술로 울분을 달래며 사람도 귀신도 아닌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딸아이에게 더 좋은 미래를 주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전남편의 무리한 요구를 다시 한 번 들어주기로 하고, 50만 위안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철저히 돈의 노예가 되어 밤낮없이 일만 했습니다. 후에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남편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결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지만, 지금의 남편은 온화하고 자상했고, 저와 딸아이도 싫어하지 않다 보니 그와 결혼해 일본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에 온 후, 딸아이는 엄마가 이제는 자신을 싫어하는 줄로 생각해 날마다 전화로 울면서 엄마 될 자격이 없다며, 미워한다며 원망했습니다. 딸아이의 말은 제 마음을 아프게 후벼 팠습니다. 저는 속으로 ‘넌 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니? 내가 너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 아빠가 너를 데려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꼭 데려오리라 날마다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더 악착같이 일을 했는데, 머릿속에는 오직 돈과 딸아이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50만 위안만 벌면 아이를 일본에 데리고 와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전남편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계좌번호를 달라고 말했을 때, 그는 또다시 100만 위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전남편은 매번 저를 속이며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딸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몸이 부서지게 일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기만과 고통뿐이었습니다. 결국, 지쳐 버린 몸이 견디지 못하여 집에서 요양해야 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은 더욱 괴로웠고, 온 마음에는 원망뿐이었습니다. 저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어머니와 언니가 다시 한 번 제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 볼 것을 권고했지만, 저는 여전히 딸아이 생각만 할 뿐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2015년까지도 딸아이를 데려오지 못했었습니다. 귀국했을 때, 어머니는 저에게 더 이상 운명에 맞서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하시면서 또 한 번 간곡히 권고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 손에 있단다. 네가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면서 너의 운명을 네 스스로 바꿔 보려 하다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야. 네가 가정에서 고통을 겪을 때부터 하나님의 구원은 네게 임하셨어. 그런데 너는 늘 스스로 해결하려 했고, 돈만 주면 딸아이를 네 곁으로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지금 네 생각대로 되었느냐? 너는 몇 년 죽도록 일만 했는데, 결과는 어떠냐? 네가 바라던 게 이뤄졌어? 이제는 사람의 운명을 정말 스스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 보거라! 오직 하나님만이 널 구할 수 있어!” 말씀을 마치신 어머니는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라면,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순복하려는 더 진실한 소망이 생기게 되고, 더욱더 하나님으로 그의 운명을 지배하게 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믿음도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운명에 대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모를 때 스스로 자기의 성미대로 짙은 안개 속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그 노정을 걷는 것이 매우 고생스럽고 또 매우 슬프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사람이 인식하게 될 때,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하여 ‘자기의 두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드는’ 고통스러운 날들에서 떠나고, 계속해서 운명과 맞서 싸우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이른바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없는 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날,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날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의의가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조물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조물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적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저의 눈앞에는 딸아이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았던 지난날이 한 장면 한 장면 펼쳐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자기 뜻대로 온 힘을 바쳐 살아왔고, 딸아이를 위해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고된 노동과 전남편의 무리한 요구, 딸의 오해, 딸에 대한 걱정과 근심 등으로 저의 심신은 지쳐 가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겪은 슬픔과 고통, 괴로움은 오직 저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가 고통 속에서 살게 된 근원과 그 정형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자신이 겪은 그 모든 좌절과 고통이 모두 사람의 운명을 누가 주재하는지 모른 채 자신의 노력만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 하였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뭔가를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고통 속에 내몰아 상처만 쌓여 갔던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안정시켜 인생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내 마음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항구는 어디일까?’

 

   제가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이 ‘막차에 오르다’라는 이 복음 영화를 보자꾸나! 얘야, 지금은 마지막 시대란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역인데 벌써 다 끝나가고 있단다. 이제는 막차와 같으니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해. 요 몇 년간 나와 네 언니가 여러 번 복음을 전했지만 너는 늘 돈을 버느라 바쁘게 보내며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았잖아. 네가 지금까지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잖아. 얻은 것도 아무것도 없고 말이다. 이건 모두 네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사탄에게 패괴된 결과야. 그러니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네 삶에도 희망이 생길 거야!”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저는 진지하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는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왔었는데, 웬 일인지 신앙을 별로 접해 보지 못했던 제가 뜻밖에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던 데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반성하고 깨달을 때, 저도 공감되어 몹시 감동되었습니다. 저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주인공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번번이 거절하며 계속 자신을 믿고 살아왔지만, 지금껏 세상의 쓴맛만 실컷 맛보고 진정한 평안과 기쁨은 조금도 누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진작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깨달은 저는 그 후에는 더 이상 자신의 두손만 믿고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막차에 올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고 의지하며 살리라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만드시고 저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계시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저의 운명을 바꾸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와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저의 주로, 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홈페이지와 동영상에서 그렇게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믿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 밖에 일본에서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건 물론이고, 캐나다, 미국, 한국 등 많은 나라에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세워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미 각국에 널리 확장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신이 ‘막차’를 타게 되었다는 것을 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패역대로 저를 대하지 아니하시고 여러 차례나 기회를 주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 집으로 오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제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 정말로 상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흔들림 없이 따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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