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3. 03:43ㆍ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복음 간증
허난성 장이타오
“하나님 사역 너무나 실제적이네. 공의와 거룩으로 가득하고, 오랜 세월 인내하며 우리 위해 사역하시네. 전에 하나님을 믿어도 사람의 모습이 없었고,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하여도 전혀 모르고, 오늘에야 수치 회개 빚진 것을 알았네. …당신의 엄한 심판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고, 진실한 당신 사랑에 감동받고 또 빚졌네. 당신의 사역으로 구원받고 성정 변화되었네. 마음에 슬픔 고통 없이 즐거움으로 가득하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 내게 주신 사랑 너무 크네>에서 발췌)
매번 이 체험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저에 대한 하나님의 오랜 시간 구원이 떠오르면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의 마음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형벌로 교만 자대하고 야심이 아주 많고 패역한 저를 변화시켜 사람의 모양이 조금이나마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집도 가난한 데다가 부모님도 온순하여 저는 늘 남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고, 매를 맞거나 수모당하는 것이 다반사였으며, 이로 인해 툭하면 울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고, 장래에 작은 관직이라도 얻어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려는 바로 그때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홍위병이 반란을 일으키고, 노동자가 파업하고, 학생이 동맹 휴업을 하고 매일 혁명을 일으키는 바람에 난장판이 되어 민심이 흉흉해졌고, 대학 입시 제도도 금지되었습니다. 진학 시험을 볼 기회를 잃은 저는 중병에 걸린 것처럼 괴로웠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후에 저는 ‘진학 시험을 보지 못하고 관직도 얻지 못할 바에는 열심히 돈이나 벌자.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우러러보잖아.’라고 생각하고,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장사할 밑천도 없었기에 저는 친척과 친구에게 500위안을 빌려 정육점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고기는 한 근에 0.7위안밖에 하지 않았지만 각종 필요한 도구들을 사고 나니 500위안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번번이 오늘의 수입을 내일의 밑천으로 썼고, 돈을 벌기만 하면 빚을 갚았습니다.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 저는 무진장 애를 썼고 하루종일 여가 시간도 없었습니다. 몇 년의 노력 끝에, 일솜씨도 점점 좋아졌고 장사도 갈수록 번창해졌는데, 그로 인해 집안도 어느새 부유해져 많은 사람이 부러운 눈길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1990년 봄, 마을의 한 사람이 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들어 보려고 몇 번 갔었는데, 한 형제가 설교할 때 많은 사람이 그를 높이 평가하고 앙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존경받는 그 장면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데다가 주님의 은혜와 상도 받을 수 있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저는 가정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성경을 깊이 연구했고 특히 성경 지식을 추구하고 성경 장절 외우기를 중요시했는데, 그 결과 마침내 유명한 장절을 많이 숙지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신 말씀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를 보면서 저는 속으로 ‘돈은 적당히 있으면 충분해. 아무리 많이 벌어 봤자 죽으면 그만이잖아? 주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베드로를 본받아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장사를 그만두고 하루종일 교회에서 분주히 뛰어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아주 열성적이었고, 친척과 친구들을 목표로 단시간에 19명을 전도했고, 또 그 19명을 통해 23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저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글자대로만 이해하여,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행하고 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으므로 다음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땅에서 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야심의 지배로 저의 열정은 더없이 커졌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솔선수범하여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심지를 세웠습니다. 저는 형제자매 집에 가서 물을 기르거나 장작을 때거나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병에 걸린 형제자매에게 문안도 했으며, 누가 돈이 없으면 제 돈으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다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솔선수범하여 저는 형제자매들의 일치된 호평을 받게 되었고 상층 교회 책임자의 신임도 얻게 되었습니다. 1년 후 저는 교회 책임자로 발탁되어 30개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는데, 관리해야 할 신도가 거의 40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런 지위를 얻게 되자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고, 저의 노력이 끝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되자 저의 마음속에는 또 더 높은 이상(理想)이 생겼습니다.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찬양과 숭배를 받고 싶었습니다. 또다시 1년 넘게 노력한 끝에, 저는 교회의 상층 책임자가 되었고, 5개 현의 동역자를 인솔하게 되었으며, 420개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맡겨진 일들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특별히 겉면의 좋은 행실을 중요시하고, 동역자와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좋은 이미지 세우기를 중요시했습니다. 동역자들의 지지와 형제자매의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하여 저는 교회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는 것을 반대하고 이성 교제와 모든 부조리를 금지시켰습니다. 저의 ‘정직함과 정의감’은 동역자와 형제자매의 옹호와 찬성을 얻었고, 이로 인해 저의 교만한 본성도 점점 더 부풀어 올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저는 자주 쓰는 성경 구절은 거꾸로도 줄줄 외울 수 있었고, 하층 교회 책임자와 동역자들에게 설교할 때 성경을 보지 않고도 성경 구절이 입에서 술술 나왔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다 저에게 매우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엇이든 다 제가 결정했고 누구나 다 제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가 한 말이 맞고 제 견해가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관리하는 것이든 구분하는 것이든, 교회 책임자와 동역자를 발탁하는 것이든 저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았고, 다 저 혼자 결정했습니다. 정말 ‘왕권을 잡은’ 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강단에 서서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자신의 풍채를 매우 즐겼습니다. 또 모든 사람이 저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낼 때마다, 뭇별이 달을 에워싸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런 느낌은 저의 마음을 후련하게 했고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특히 매번 요한복음 12장 44~45절,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그리고 3장 34절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라는 말씀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속에 매우 누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여겼고, 하나님이 저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어 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을 이해할 수 있고, 남들이 모르는 ‘내포된 뜻’을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위가 가져다준 즐거움 속에 잠겨, 제 자신이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부단히 확장됨에 따라 저의 지명도도 점차 높아졌고, 그로 인해 현지 파출소에서 저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정부의 핍박으로 인해 저는 집에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공교롭게도 집에 옷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공안에게 붙잡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3년 동안 저는 각종 잔혹한 박해와 괴롭힘을 당했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삼년 같았으며, 온몸은 마치 껍질이 다 벗겨진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소 후 저는 여전히 백배의 믿음으로 복음을 전했고, 또한 ‘원래 자리에 복직’되었습니다. 반년 후 저는 또 현지 정부에 붙잡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저를 괴롭힌 후 구치소에 70일 동안 가두었고, 마지막에 교도소에 보내 벽돌 가마에서 벽돌을 꺼내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때는 마침 음력 7월의 중복 때였는데, 가마 내의 온도가 무려 70도였고, 매일 만 개가 넘는 벽돌을 꺼내야 했습니다. 굶주림과 그 전에 당한 고문의 휴유증으로 저의 몸이 매우 허약해졌기 때문에 이런 고온 작업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악독한 교도관은 이런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수갑을 등 뒤에 채운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고 저의 겨드랑이와 다리 굽힌 자리에 술병을 하나씩 끼우고는 전기봉으로 때렸는데, 수갑의 톱니가 살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이런 잔혹한 박해 때문에 저는 7일 동안 일하고는 결국 가마 안에 쓰러졌고, 52시간의 응급처치를 통해 깨나긴 했어도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는데, 의식은 있었지만 보고 듣을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밥도 먹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했으며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습니다. 중공의 이런 박해를 받고 난 후 저의 교만한 본성은 많이 꺾였습니다. 위풍당당하고 득의양양하던 예전의 모습은 완전히 없어졌고, 침울하고 비관적이고 끝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후에 교도소의 교도관들은 또 수작을 부렸는데, 그들은 의사를 찾아 가짜 진단서를 조작하여 제가 ‘유전병’이라며 저의 아내에게 연락해서 저를 집에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팔 수 있는 물건은 다 팔았고, 친척들은 저를 보러 와서는 비꼬아 풍자하고 비웃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저는 더욱 의기소침해졌는데, 이 세상이 너무 어두워 사람 사이에는 인정도 사랑도 없고, 핍박과 괴롭힘과 비웃음 그리고 훼방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병고에 시달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저는 앞날을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제가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형제 2명이 저에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면서, 하나님이 또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였고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말을 못하는 바람에 저는 성경 구절을 찾아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반박했습니다. 그들은 온화한 말투로 저에게 “형제님,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겸손하고 찾고 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새롭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님이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하신 역사를 고집한다면 하나님나라시대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다 그 속에 내포된 뜻이 있고 실제적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형제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저에게 읽어 주었고, 또 성경에서 하나님 말세 역사에 관한 많은 예언을 찾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형제들의 교통을 통해, 저는 하나님 이름의 의의, 하나님 3단계 역사의 내막,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취지,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성경의 내막 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제가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고, 또한 성경을 오랫동안 봤어도 깨달을 수 없었던 비밀과 진리였습니다. 저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고 그 말씀에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마지막에 저에게 하나님 말씀 책을 한 권 주면서 “병이 다 나은 후 동역자와 형제자매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주 기쁘게 하나님 말씀 책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매일 누워서 하나님 말씀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누리는 저의 심정은 물 만난 고기 같았으며, 매일 읽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저의 병도 점차 호전되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조금씩 걸을 수도 있게 되었으며, 혼자 생활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매주 두 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교회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저의 교만한 성정이 낱낱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각종 인ㆍ사ㆍ물을 통해 저를 심판 형벌하고 책망 훈계하셨습니다. 그제야 오만하기 그지없던 저는 조금씩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교회에서 18세쯤 되는 어린 자매를 안배하여 저를 목양하게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제가 전에 있던 교파의 한 형제의 딸이었는데, 예전에 제가 교회를 책임지고 있을 때 자주 그 자매 집에 갔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교회 책임자는 왜 사람을 안배할 줄 모르지? 나를 양육하라고 애를 보내다니? 이건 나를 얕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린 자매에게 경시하는 말투로 “내가 하나님 믿은 시간이 네 나이보다 많다. 예전에 내가 너의 집에 갔을 때 네가 몇 살이었는 줄 아니? 자주 너와 놀아 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네가 날 양육하다니…”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자매는 저의 말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그 말에 속박받아 다시는 저의 집에 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가 되어 이웃 마을에 사는 또 다른 자매가 양육하러 왔는데, 그 자매도 나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입으로는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믿은 햇수를 보든 권위를 보든, 성경 지식이나 교회를 다스리는 경험을 보든 내가 너보다 훨씬 낫잖아! 네 나이를 봐도 하나님 믿은 지 3~4년밖에 안 돼 보이네. 나는 이미 21년이나 믿었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양육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말솜씨가 유창하고 시원시원했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정곡을 찔렀습니다. 예배드릴 때 그 자매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찾아 저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 나서서 설교하고 사역하고 모임하고 강연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는 걸 좋아하며, 사람들이 자기를 숭상하고 에워싸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기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자기 형상을 중시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 …만약 그에게서 정말 이런 것들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교만 자대(自大)하고, 하나님께 전혀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관할하고 점유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리가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에서 매우 두드러진 것은 교만 자대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은 날 선 검같이 제 마음을 찔렀고 제 정곡을 찔렀으며, 저의 모든 행위의 비열한 속셈과 추악한 표현 및 저의 본성 실질을 매우 정확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를 비춰 보니 저의 본성이 너무 교만하고 실질이 하나님과 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남들이 높이 평가하고 숭배하는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보고 성경 지식을 쌓았으며, 노력 끝에 드디어 꿈속에서도 바라던 지위와 명리 및 사람들의 옹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앙망하고 숭배하는 것을 즐겼고, 사역하고 설교함으로써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켰으며, 의사 결정을 독점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했으며,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 뭇별이 달을 에워싸는 듯한 느낌을 누리기 좋아했으며, 심지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성경 장절로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여겼고, 아무도 자신과 비길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또 자신이 오랫동안 사역하고 설교한 경험을 자본으로 삼아 자매를 얕잡아 보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은 햇수도 오래고 성경 지식도 많고 교회를 다스리는 경험도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으며, 어린 두 자매를 깔보고 멸시했고, 말로 타격을 주고 상처를 입혔는데, 정말 너무 교만하여 이성과 인성을 잃었습니다. 저의 추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대립되고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는 것이고, 저의 본성이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기세가 꺾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저는 너무 교만합니다. 지위가 있으면 자부심을 가지고, 지위가 없어도 여전히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았으며, 자격을 논하며 권위로 사람을 속박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정말 너무 부끄럽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를 구원해 주시니 당신 말씀의 드러내심과 심판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어서 자매는 또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찾아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지와 양심은 이미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 내 눈에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고 모두 독사이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어떻게 가련한 척하든지, 나는 사람에게 측은지심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아예 흑과 백의 차이를 모르고, 사람은 모두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지가 이렇게 마비되고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인성이 이렇게 비열하면서도 왕 노릇 하고 싶어 하는데, 이런 이지로 누구에게 왕 노릇 하겠는가? 이러한 인성으로 어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는가?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소인배들이다! 나는 복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좀 비춰 보기를 권고한다. 너는 왕이 될 그릇인가? 너는 복받을 오관을 갖추었는가? 성정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내일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참으로 망상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 말씀 마디마디가 제 마음을 찔러 더더욱 심판받았고 또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 교파에서 왕권을 잡는 것을 추구하던 추악한 장면들이 또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권력을 잡아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높은 위치에 서서 형제자매에게 명령을 내렸고, 하나님을 알도록 형제자매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우러러보게 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신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 혐오받고 사람으로 역겹게 하는 것이어서 정말 얼굴을 내밀 면목이 없었으며, 진심으로 형제자매에게 미안했습니다. 저는 정말 창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필사적으로 지위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의 높은 평가와 앙망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밤낮으로 뛰어다니면서 고생하고 옥살이하고 고문으로 인해 모진 고초를 당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기는커녕 도리어 교만한 본성이 갈수록 더 심해져 마음속에는 하나님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땅에서 왕 노릇 하려고 망상했습니다. 또 자신이 종교에 있을 때 중공의 박해를 받은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을 통해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더 잘 받아들이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하나님도 없고 한없이 교만하고 종교에서 그런 명성과 지위를 갖춘 저로서는 절대로 쉽게 그 지위를 포기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저는 하나님 앞에 오려는 신도들을 가로막는 악한 종이 되어 하나님과 끝까지 맞서 나중에 징벌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커다란 관용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으로 드러내심으로 인해 저는 많이 겸손해졌고, 다시는 형제자매 앞에서 감히 그렇게 교만하고 이성이 없이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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