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2. 06:50ㆍ하나님의 약속/간증
시대가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있고 하나님의 역사도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역사(歷史)를 회고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알려주신 율법대로 생활했는데, 만약 누가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느꼈고 이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사탄에게 점점 더 깊이 패괴되어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소와 양, 비둘기를 매매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짓을 했음에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고 모두 죄 속에서 살면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친히 만드신 인류가 이렇게 사탄에게 먹히는 것을 차마 보실 수 없어 예수의 이름으로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오셔서 역사하시면서 우리에게 생명 양식을 공급해 주시며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위엄과 진노이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하나님이 긍휼 자애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를 베풀어주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모두 잇따라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만약 예수가 말씀이 육신 되어 가져온 성품이 심판과 저주일 뿐만 아니라 여태껏 사람이 범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것이라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때면 사람이 영원히 죄에 속할 것이다. 이렇다면 6천년 경영 계획이 다만 율법시대에 정지되어 율법시대가 6천년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사람의 죄가 점점 많아지고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어 인류를 만든 전부의 의의가 없어지며, 사람은 다만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를 섬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의 죄과는 오히려 시초에 만든 인류를 뛰어넘었다.』
『예수가 한 사역은 그때 그 시대의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그의 사역에 따라 그는 와서 인류를 구속하였고 사람의 죄를 사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가져온 모든 성품은 겸손ㆍ인내ㆍ사랑ㆍ경건ㆍ포용과 긍휼 자애였으며, 사람에게 가져온 것은 풍부한 은혜와 축복이었고 역시 사람이 누릴 온갖 향수지물(享受之物)이었다.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다 평안과 희락과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고 또한 그의 긍휼과 자애였다. 당시에 사람이 접촉한 것에 대량의 향수지물이 있고 마음이 평안하고 영적으로 위로를 받은 까닭은 구주 예수를 의거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처한 시대와 관계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의 패괴를 겪었다.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려면, 역사 효과에 달하도록 반드시 풍부한 은혜가 있어야 하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포용과 인내가 있어야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죄과를 족히 사할 수 있는 속죄제도 있어야 하였다. 은혜시대의 사람이 본 것은 단지 사람의 죄과를 사하는 속죄제, 즉 예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들이 본 것은 단지 예수의 긍휼과 자애였는데, 이런 것은 모두 그들이 은혜시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구속되기 전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베풀어준 예수의 많고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하였다. 이래야 그들에게 유익한 점이 있었는데, 그들로 하여금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게 하였고 또 그들에게 베풀어준 예수의 포용과 인내를 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기회를 얻게 하였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말미암아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그들에게 베풀어준 예수의 풍부한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내가 온 것은 의인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다시피,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포용과 인내를 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의 사람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 앞에 와서 죄를 자백하고 회개만 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었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이 회개의 복음을 세상 어디나 전해야 한다고 부탁하셨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복음은 이미 세상의 방방곡곡에 전해졌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도 수천 수억을 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면서 여전히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남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형제자매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포용하고 인내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든지 이런 사랑에 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 사이에 늘 하찮은 일로 서로 다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심지어 서로 치고받기까지 하는데 형제자매들이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목사들도 이미 예전의 경건함을 잃고 자신의 지위를 위해 서로 패거리를 짓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하나님의 제물을 자기 것으로 차지합니다. 마음을 가라앉혀 잘 생각해봅시다. ‘왜 신도와 목사들이 이미 성도의 체통을 잃었는지, 왜 하나님에 대해 조금의 경외심도 없고 이제는 경건한 신도도 아닌지?’ 이 문제에 관해 우선 몇 단락 경문을 보도록 합시다.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11) 신도들이 믿음과 사랑이 식어가고 시기 질투하고 암투를 벌이며 설교자도 할 말이 없고 동역자 사이에 서로 권력을 쟁탈하면서 교회가 온통 황량해졌는데 마침 성경의 아모스 4장 6절에서 8절이 응한 것입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8장 11절에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문에서 보다시피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목사, 동역자들은 다만 ‘이가 깨끗해지고’ ‘양식이 떨어지고’ ‘비를 얻지 못해’ 형제자매들의 필요에 공급할 수 없습니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즉 성령의 역사가 옮겨졌는데 사람이 찾고 구하지 않아 따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역사를 시작하셨을 때 성전이 황량하여 강도의 굴혈이 된 것과 같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와 예수님을 따르면서 성령의 역사를 얻고 새로운 실행길이 있게 되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하여 여전히 성전 안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지 않아 사람은 전혀 지키지 못하고 흠이 있는 소와 양을 바칠 뿐이었습니다. 오늘 교회의 상황도 바로 당시의 성전과 마찬가지로 황량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예수님은 이미 육신으로 돌아오셨고 위엄과 진노를 만재하시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 심판을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사역을 전개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야만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행할 길이 있게 됩니다. 따르지 못한 사람은 자연히 메마를 것이고 힘이 없을 것이며 사람이 계명을 지키고 싶어도 오히려 지키지 못하며 죄를 짓고는 자백만 할 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의 사역은 각기 종류대로 하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끝나는 사역이다. 그것은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이 이미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 즉 그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 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상, 하나님의 최종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최종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네가 역사(歷史)를 지킬 수 있기만을 구하고, 제자리 걸음으로 원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만을 구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다. 그러나 네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고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데리고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또 어찌 너를 데리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겠는가? 또 어찌 너를 데리고 천당에 갈 수 있겠는가? 너의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로 하여금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너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로 하여금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너로 하여금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가 아니고 더욱이 너로 하여금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이러한 차이가 너로 하여금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인가? 너로 하여금 그 속의 비밀을 깨닫게 할 수 없단 말인가? 네가 너 자신을 하늘 위에 보내어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도래가 없으면 네가 자신을 천당에 데리고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리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권하는데, 너의 이 꿈은 그쳐야 한다. 너는 지금 누가 역사를 하고 있고, 지금 누가 말세에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다.』
말세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하신 음성이자 역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성경만 지키면서 늘 성경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늠하고 성경의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말세의 그리스도─전능하신 하나님(즉 재림 예수님)을 저버린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잃을 것이며 마지막에는 생명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성경의 글귀에 자신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성경을 숭배한 바리새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관념에서 나오고 성경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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