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역과 말씀(6)<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사람에게 성경을 풀어 주다>

2019. 1. 22. 08:26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천국 복음/하나님을 아는 길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사람에게 성경을 풀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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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30~32)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36~4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우리 계속해서 위의 이 몇 구절들을 보자. 첫 구절은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은 것과 성경을 풀어 준 것에 관해 기록한 것이고, 두 번째 구절은 예수가 구운 생선을 먹은 것에 관해 기록한 것이다. 이 두 구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될까?

너희는 예수가 떡을 먹고 구운 생선도 먹었다는 이런 묘사들이 너희에게 어떤 장면을 보여 주는지 상상해 보아라. 만약 예수가 너희 앞에 서서 떡을 먹는다면,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혹은, 예수가 너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면서 생선도 먹고 떡도 먹는다면, 그때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한번 상상해 보아라! 만약 네가 주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껴지고, 주님은 사람을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느껴진다면, 그런 느낌은 정확하다. 그것이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들 앞에서 떡을 먹고 생선을 먹는 일로 도달하려는 효과이다. 만약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과 대화만 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뼈와 살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혼이라고 느껴지게 한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실망하지 않겠느냐? 실망하게 될 때는 버림받은 느낌이 들지 않겠느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지 않겠느냐? 그 거리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역효과를 가져오겠느냐? 사람들은 틀림없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경원시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끊고 은혜시대 이전의 사람과 하늘의 하나님과의 관계로 되돌아갈 것이다. 사람이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영체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친근감을 잃게 하고, 동시에 또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에 있을 때 사람과 거리감 없도록 맺어 놓은 친밀한 관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영체에 대한 사람의 느낌은 단지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말없이 응시하는 것일 뿐,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교류하거나 대화하지 못하며, 따르고 의뢰하고 앙망하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못 된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며, 오로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게 다가가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면, 너의 가족, 너의 자녀가 너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까이하지 못하며, 늘 너를 피할 때, 네가 그들을 위해 했던 모든 것이 다 그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게 될 때, 너의 심정은 어떠하겠느냐? 너는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피할 때, 하나님에게 생기는 심정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부활한 후, 예전 그대로 뼈와 살이 있는 형상으로 사람에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고,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지친(至親)으로 여기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하나님은 사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고, 사람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다. 이제 너희는 내가 왜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사람들에게 성경을 풀어 준 것과 제자들이 예수에게 생선을 드린 것에 관한 이 두 성경 구절을 발췌했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느냐?

예수가 부활한 후에 일련의 일들과 말씀을 한 것은 마음을 많이 썼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정이 가득 담겨 있고, 또한 육신에 있는 기간에 사람과 맺었던 아주 친밀한 관계를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해 지키고 있다는 것도 가득 담겨 있으며, 더욱이 육신에 있는 기간에, 따랐던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거했던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그리움과 그의 기대까지 가득 담겨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간에 거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았고,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간격을 벌어지게 하는 것도 원치 않았으며, 더욱이 사람에게 예수가 부활한 후 더 이상 사람과 가까이하던 그 주님이 아니고, 더 이상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것은 예수가 영계로 돌아가고, 사람이 영원히 볼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으로 인해, 사람에게 예수와 사람 간에 지위상의 차이가 생겼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경원시하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팠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아주 멀어졌다는 것을 뜻하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얻기 아주 힘들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영체로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또다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벌어지게 할 것이고 동시에 또 사람에게 부활한 후의 그리스도는 위대하여 사람과 동류가 아니어서 더 이상 사람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할 수 없으며, 사람은 죄가 있고 더러워 영원히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다고 잘못 여기게 했을 것이다. 예수는 사람의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육신에서 항상 해 오던 일련의 일들을 하였고, 성경에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라고 기록된 것처럼 해 주었으며, 또한 그전처럼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었다. 예수가 행한 그 모든 것은 예수를 본 각 사람에게 주님은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원래의 예수님이며,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겪었지만 부활하였고, 사람을 떠나지 않았고, 또 사람들 가운데 돌아왔으며, 예수의 모든 것은 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람 앞에 서 있는 인자는 여전히 원래의 예수였고, 그의 움직임과 언행은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익숙한 느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예수는 예전처럼 자비와 은혜가 넘치고 포용이 넘쳤으며,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는 예수였고, 여전히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예수였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같이 성경을 나누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피와 살이 있어 사람들에게 만질 수도 볼 수도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런 인자는 사람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고, 편안한 느낌을 가져다주며 또한 사람에게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듯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그 인자를 마음 놓고 대담하게, 믿음 가득히 의지하고 앙망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조금도 거리낌 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에게서 은혜와 축복 그리고 평안과 희락을 받고, 그에게서 보살핌과 보호를 얻고자 기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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