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2020. 4. 27. 07:15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낭송/설교 교통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알아들으셨겠죠? 예를 들면, 누가 “하나님, 저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당신을 위해 화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분량은 너무나 작습니다. 저는 살아가는 것도 걱정되고, 앞날과 운명도 걱정되고 나중에 육체가 고통받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며 내려놓지 못하겠어요. 저는 참으로 당신께 빚졌어요. 저를 구원하시고 일깨워 주시길 원하고, 제가 하루속히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완전히 화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했다고 합시다.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주 진실하다고 말합니다. 또 기도하며 말합니다. “다른 사람도 가정 상황이 저와 같은데, 어떻게 그런 분량이 있나요?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모든 시간을 다 화비할 수 있는데, 저는 왜 할 수 없는 거죠? 저는 진리가 너무 부족하고 늘 육체를 생각해요. 저의 믿음은 너무나 작아요. 하나님, 당신에 대한 참된 믿음이 생겨 하루속히 당신을 위해 화비할 수 있도록 저에게 깨달음과 빛 비춤을 주세요. 당신의 가장 큰 바람은 바로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마지막에는 다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을 증거할 수 있고,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당신이 영광을 얻으시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당신은 제가 무지몽매한 것을 알고 계십니다. 또한 제 분량이 작다는 것도, 제 믿음이 너무나 작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속 말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하나님과 마음을 털어놓고 교제하면,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을 기만하거나 입술로 하나님을 대충 속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게 되어 성령이 바로 역사하시게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조물주이십니다. 피조물은 조물주 앞에서 마땅히 무엇을 갖춰야 합니까? 참된 순복과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참된 신뢰와 진실한 경배입니다. 반드시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이 이끄시고, 주재하시고, 안배하시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면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인 겁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면 사람의 기도는 어떨까요? 하나님과 서로 교제하는 것이 갈수록 참되고 성실하며, 말은 갈수록 진실하고 간절해집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아, 이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구나, 말하는 것이 다 마음속 말이니 내가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없구나. 이 사람을 이끌고 일깨워 줘야겠다. 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진리를 깨닫도록 해야겠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기 때문에, 곧 당신에게 역사하실 것이고 성령께서 이끄실 겁니다. 맞지 않습니까? 사람이 아직도 하나님을 이용해 복받거나 하나님과 거래하고 싶어한다면,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없습니다. 

 

  확장 열람: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복받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하나님을 믿어 뭐하겠습니까?’라는 이런 신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관점입니까? 이런 사람은 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없겠습니까? 그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할까요? ‘하나님, 당신은 전에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복을 베풀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왜 저에게는 큰 복을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데,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좋습니까?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어떻게 좋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브라함을 본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의 본심이 옳지 않은 겁니다. 그렇죠? 마음이 옳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을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사람도 눈치채거나 알아들을 수 있는데,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더 잘 아시죠. 그런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너에게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느냐? 그와 같은 인성이 있느냐? 네가 그와 비교할 자격이 있느냐? 너는 자신이 어떤 꼬락서니인지 거울을 좀 비춰보거라. 너는 아브라함의 털끝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실 텐데, 하나님은 아마 이런 뜻일 겁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언어로 하나님의 마음을 묘사했기 때문에 비록 꼭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우리가 한 말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뜻은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묘사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마 그런 마음이고, 하나님이 사람의 그런 기도를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이끌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고, 또한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를 공중으로 끌어올려 당신과 만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 말씀이 오래도록 실현되지 못하는 겁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입니까? 어떤 사람은 비정상이라고 합니다. 어디가 비정상입니까? 그저 느낌만 있고 분명히 말하지 못하면, 이건 무슨 문제일까요? 이 문제의 실질을 간파하지 못한 겁니다.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는 건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건 하나님을 사람과 동등한 인류로 본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조물주이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분을 자신과 같은 부류로 여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과 그렇게 말하는 건 괜찮습니다. “당신이 지난번에 저에게 어떻게 말했죠? 당신은 왜 실천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말에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건 뭐, 괜찮습니다, 태도가 좋든 나쁘든 사람은 평등하니까요. 그러나 사람이 조물주께 이런 말투로 말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인 겁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해지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런 말을 사탄이 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한 것이 사탄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등해지고 싶어 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입니다.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여러분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아닌 각종 행위들을 더 예로 들 수 있습니까? 어떤 기도, 어떤 몇 가지 유형의 기도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주님 앞으로 들림받아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고, 또한 주님이 그들 가운데서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저는 한평생 주님을 믿었고 또한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 주님은 왜 제게 먼저 나타나시지 않고 그들에게는 나타나십니까?’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그와 주님과의 관계가 정상입니까? 정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어떤 교계 인사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당신은 왜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우리에게는 나타나시지 않습니까? 우린 당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았고,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을 따르면서 비바람을 무릅쓰고 곳곳에서 당신을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우리 기도도 들어주지 않으셨으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이제야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를 들어 올려 천국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신다면, 누가 주님이 오셨다고 증거해도 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데, 그와 주님의 관계가 정상입니까? 역시 비정상입니다. 또 한 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2~30년 믿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화비도 많이 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좋은 직장도 포기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20여 년을 돈도 벌지 않았습니다. 음식도 변변찮게 먹었고, 옷도 평범하게 입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 그리고 비방과 훼방도 다 당했습니다! 오늘날 당신이 다시 오셔서 저를 끌어올려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고 조그마한 느낌도 없습니다. 당신은 저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 정말로 저를 버리셨다면, 당신에게 신용이 없는 것이니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믿을 수 없고, 따를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이런 기도는 이지가 없습니다.

 

기도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교회[전능신교]

  계속해서 아래의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려면, 모두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통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인 것입니다. 마치 두 사람이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을 나누는 것과 같은데, 다 마음속 말만 합니다. 사람이 마음속 말을 하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요? 사람은 심적으로 해방감을 느끼고, 시원하다고 느끼고, 또한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한 느낌일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일이 임하면 오랜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입을 열기도 멋쩍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서 혼자서 끙끙 앓는데, 자신이 모든 고통을 떠맡습니다. 결국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적으로 무너집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이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겁니까? 그렇게 큰 어려움이 있는데,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몇 가지 경우가 있을까요? 첫째, 사람이 그 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지 못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남몰래 저지른 일이고, 비열한 수작이고, 또한 광명정대하지 못하고 사악한 일이기에 죄악에 사로잡힌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고, 또한 사람에게 말할 용기도 없어 입을 열기가 어려운 겁니다. 이런 사람은 가장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많이 억눌리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이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여기고, 그것은 사람의 일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이것도 한 가지 경우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경우 외에 또 다른 경우가 있습니까? 또 하나의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진리를 찾고 구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인데, 그렇게 하면 손해를 보게 될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상황은 다 사람이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고,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많은 일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겠습니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 아니고, 많은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올 수 없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해 첫째는 믿음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죄 속에서 살면서 여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고, 또 죄의 낙을 누리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죄악에 빠져 있는 것이지,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맞습니까? 그러면 지금 여러분이 이런 문제에 부딪혔다면,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진리를 찾고 구하고 싶습니까? 진리를 찾고 구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게 되고 또한 그것을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찾고 구하고 싶지 않다면, 내려놓는 것이 손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그것을 꼭 끌어안고 움켜쥐고 있다면 마지막에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보세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다가 결혼 상대를 만나니 꼭 껴안고 놓지 않습니다. 3년을 끌어안고 보니,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손해가 아닙니까? 그는 용기 있게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 기도하면 양심과 얼굴을 둘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건 내려놓고 얼른 육체를 배반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고, 더 껴안고 한동안 더 누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다가 시험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방인이 그에게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 주어 돈 벌 기회가 생긴 겁니다. ‘아, 돈 벌 기회는 드문 거야, 세상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잖아, 얼른 한몫 벌어야겠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그 일에서 하나님께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진리를 거듭 찾고 구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그는 “제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것을 남겨 두게 하시겠어요? 하나님은 당연히 ‘얼른 버리거라!’고 하실 텐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어요. 기도하면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어요. 제가 버리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 앞에 가져가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이 일은 제 자신의 일이고 사적인 일이니 하나님께 맡길 수 없어요.”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요?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늘 자신의 사적인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런 일들이 당신의 생명 진입에 어떤 해를 끼치게 될까요? 도중에 결혼 상대를 만났는데, 한번 빠지니 3년입니다. 그 3년 동안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게 될까요? 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겠습니까? 도중에 돈 벌 기회가 생겨 거기에 빠지니 또 3년입니다. 그 결과, 돈은 벌었지만 또 없어지니 후회막급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쉽습니다. 오직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간혹 사탄의 시험이 임하게 되면 사람은 벗어나지 못하여 단번에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시험에 들게 되면,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비정상이 되어 사람은 피하고 숨을 겁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피하고 숨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한 번 피하고 숨게 되면, 때로는 한 달이 되고, 6개월이 되고, 때로는 1년이 됩니다.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데, 하나님을 피하기 시작하고, 또한 감히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기도해도 할 말이 없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이것은 생명이 자라는 것을 지체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런 것을 경력해 봤습니까? 다 경력해 보셨죠? 여러분은 다 도중에 무엇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까? 결혼 상대를 만난 사람이 많습니까? 돈 벌 기회는요? 승진의 시험은요? 이런 것이 바로 사탄의 시험인데, 벗어나지 못한다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또한 빠지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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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출처:전능하신하나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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