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중에서 가장 좋은 청춘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2019. 7. 22. 13:15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찬양/복음 간증

후회없는 청춘



  “‘사랑’은 티없이 순진한 감정, 마음으로 느끼고 사랑하고 생각하며, ‘사랑’에는 거리 간격 조건도 없다. ‘사랑’에는 의심 기만도 없고 ‘사랑’에는 거래 간교도 없다. ‘사랑’에는 선택도 없고 어떠한 뒤섞임도 없다.” ≪티없이 순진한 사랑≫, 이 하나님 말씀 시가가 저를 동반하여 고통스럽고도 지루한 7년 4개월 동안의 감방 생활을 보내게 하였습니다. 중공 정부가 비록 저의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청춘 시절을 빼앗아갔지만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귀중하고 가장 실질적인 진리를 얻었기 때문에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1996년, 저는 하나님의 높여주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리며 형제자매들과의 교통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다 진리이고 이 사악한 세상의 어떠한 지식, 이론과도 완전히 다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인생 격언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저를 기쁘게 한 것은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있으면 단순하게 마음을 터놓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으며 세상 사람과 접촉하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 경계하고 추측하며 속고 속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런 대가정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국가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일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며 올바른 인생길을 걷게 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천하가 아주 태평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일인데 중공 정부가 무엇 때문에 핍박하고 반대하며 심지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붙잡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중공 정부가 아무리 핍박하고 사회 여론이 아무리 커도 이것이 인생의 올바른 길이니 꼭 끝까지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후회없는 청춘



  그 후로 저는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 책을 발급하는 본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런 국가에서 이런 본분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수시로 붙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위해 바치며 본분을 하는 것은 저의 천직이고 의무적인 책임임을 더욱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신심 가득히 하나님과 협력하고 있을 때 2003년 9월의 어느 날,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 말씀 책을 가져다주는 도중에 시 국보국(國保局) 사람에게 붙잡혔습니다.


국보국에서, 한차례 한차례의 심문에 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시고 할 말을 주십시오. 당신을 배반하지 않고 당신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도록 보호해주십시오.’ 그동안 저는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마음이 잠시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저에게 총명과 지혜를 더해주셔서 악질 경찰에 대응할 수 있게 해주시기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에 감사 드립니다. 매번 심문받을 때마다 저는 침이 나오거나 아니면 계속 딸꾹질하여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고 저는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걸 내걸자! 목숨을 앗아가도 오늘 나에게 하나님을 배반시키려는 건 절대 안 돼!’ 정말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제가 목숨을 내걸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가 되지 않으려고 심지를 세웠을 때 하나님께서 각 방면에 저에게 ‘푸른 신호등을 켜주셨고’, 심문받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셔서 무사히 고비를 넘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중공 정부는 마지막에 저에게 ‘사교 조직을 이용하여 법률 실시를 파괴하였다’라는 죄명으로 징역 9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의 판결을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괴롭지 않았고 그들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멸시했습니다. 그들이 위에서 판결을 선고할 때 저는 아래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게 곧 중공 정부가 하나님을 대적한 증거야!” 나중에 공안 기관과 검찰청 요원들이 특별히 저의 태도를 보러 와도 저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9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중에 나가도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일 텐데, 못 믿겠으면 두고 봐요! 어쨌든 이 안건이 당신들 손을 거쳤다는 걸 기억해둬요!” 저의 태도에 그들은 놀라서 저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연이어 “대단해! 대단해! 넌 강설금보다 더 세구나! 그때 가서 나오면 다시 보자, 우리가 한턱 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기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해 실형을 선고받을 때 저는 겨우 31살이었습니다.


  중국의 감옥은 곧 인간 지옥입니다. 지루한 감방 생활은 저로 하여금 잔인무도한 사탄의 정체 및 하나님과 적이 되는 악마의 실질을 철저히 파악하게 했습니다. 중국의 경찰은 법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감옥에서는 교도관이 직접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죄수들을 꼬드겨 폭력 수단으로 다른 죄수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악질 경찰은 또 갖가지 방식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속박합니다. 예컨대,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중공 정부가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죄수복을 입어야 했고 특수 번호가 있고 머리는 그들이 요구하는 스타일로 깎아야 했고 그들이 신으라고 허락한 신발을 신어야 했으며 그들이 걸으라고 한 길을 걸어야 했으며 그들이 요구하는 발걸음대로 천천히 걸어야 했습니다. 춘하추동이든, 비바람이 불든 아니면 무더운 날이든, 추위가 심하든 죄수들은 반드시 그들의 지휘대로 행동해야 했고 개인의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집합 인원수를 적어도 15번 이상 보고하고 중공 정부의 공덕을 5번 이상 칭송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정치 임무도 있었는데 즉 감옥법, 헌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6개월에 한번씩 종합시험을 봐야 했는데 목적은 우리를 세뇌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수시로 우리에게 감옥 규율 시험도 쳤습니다. 교도관은 죄수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비인간적인 학대를 가했습니다. 저는 매일 반드시 막노동을 10여 시간 해야 했고 게다가 비좁은 작업장에서 몇 백 명이 한데 몰려 일했습니다. 인원수는 많고 공간은 좁은 데다가 여기저기 시끄러운 기계 소리로 인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한동안 그곳에 있으면 몸에 심한 손상을 받을 것입니다. 저의 뒤에는 바로 신발 구멍을 뚫는 큰 기계가 있었는데 매일 끊임없이 구멍을 뚫으면서 견디기 어려운 요란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보니 저의 청력은 심각하게 나빠져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먼지가 많고 오염이 심한 작업장의 환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폐결핵과 인두염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오랜 시간 앉아 일하며 꼼짝할 수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한 치질까지 생겼습니다. 중공 정부는 죄수들을 돈 버는 기계로 삼고 전혀 사람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고 날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지쳐 견디지 못할 정도로 몹시 피곤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러할 뿐만 아니라 또 감옥에서 수시로 아무나 뽑아 치는 갖가지 시험에 대처해야 했고 그 외에 매주 정치 임무, 노동 임무, 옥중 공개 임무 등등을 더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날마다 정신이 고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부주의해 한 부분을 따라잡지 못하면 교도관의 처벌을 당할까 매우 두려웠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막 수감되었을 때 저는 감옥에서의 이런 참혹한 학대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각종 고강도의 노동 압력과 사상적 압력은 저를 억눌러 숨을 쉴 수 없게 했고 게다가 별별 죄수들과 접촉해야 했으며 또한 악마 교도관과 감방 우두머리의 폭력과 욕설과 모욕을 참아야 했습니다……저는 늘 시달림을 받아 궁지에 몰렸고 여러 차례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특히 그 지루한 9년의 형기를 생각하면 저는 가끔씩 처량함과 무력함을 느껴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목숨을 버리는 방법으로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려고도 했었습니다. 매번 극도로 슬픔에 빠져 버틸 수 없을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우쳐주고 인도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죽을 수 없으며 그래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잘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위해 한번 살아야 한다. 사람 안에 진리가 있으면 이런 심지가 있게 되며 다시는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죽음이 너를 위협할 때 너는 “하나님, 저는 죽기 싫습니다. 저는 아직 당신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잘 간증해야 하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해야 하며, 그다음 어떻게 죽어도 괜찮다. 그때면 내가 사는 것이 만족스러운 셈이다. 지금 다른 사람이 죽어도 나는 죽지 않고 굳세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머니의 그 따스한 눈길과 같이 고독한 저의 마음을 위로해주었고 또 아버지의 따뜻한 손과 같이 저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즉시 따스한 느낌과 힘이 저의 마음속에서 솟구쳤습니다. 비록 흑암한 감옥에서 육체가 고통을 받을지라도 죽으려고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으며 또한 사탄의 웃음거리로 될 수도 있습니다. 9년 후 제가 만일 살아서 이 마귀 감옥을 떠날 수 있다면 하나의 간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고, 저는 속으로 심지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든지 잘 살아야 하고 용감하게, 굳세게 살아야 하며 꼭 간증을 잘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한다.’


  장기간의 과도한 작업은 저의 몸을 날로 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작업장에 오래 앉아 있으면 식은땀이 많이 났고, 치질이 심할 때는 출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심한 빈혈로 늘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치료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교도관들은 기분이 좋으면 저에게 싸구려 약을 좀 주었고 기분이 나쁘면 제가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병의 고통을 참으면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에 지쳐 피곤한 몸을 끌고 감방으로 돌아와 좀 쉬려고 해도 저는 편안하게 잘 권리마저도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일하러 불려나가거나 아니면 교도관의 잡소리에 놀라 깨어나곤 했습니다……저는 늘 그들에게 희롱당하여 제정신이 아니었고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외에 또 교도관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아야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난민처럼 땅바닥과 복도, 심지어 변기통 옆에서도 자야 했습니다. 옷을 빨면 햇볕에 말리는 것이 아니라 죄수들과 붙어앉아 체온으로 말렸는데, 특히 겨울에 옷을 빠는 것은 제일 힘든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축축한 옷을 입는 바람에 관절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중공 정부의 감옥에서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얼마 안 있으면 멍청해지고 둔해지고 체력이 딸릴 것이며 또는 각종 질병에 시달릴 것입니다. 우리가 늘 먹는 반찬은 철이 지나 누렇게 시든 채소 잎이었고, 좀 맛있는 반찬을 먹고 싶으면 감옥에서 파는 비싼 반찬을 사먹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교도관이 비록 사람더러 법을 배우라고 했지만 그곳에는 법이 없고 그 교도관들이 바로 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눈에 거슬리면 아무 이유나 대고 처벌할 수 있고, 심지어 아무런 사유도 없이 체벌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사람을 정치범으로 구분하여 우리가 국가 정권을 뒤엎기에 살인ㆍ방화범보다 더 무섭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를 매우 적대시하면서 가장 엄격히 관할하고 가장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 각종 악행은 바로 그 독재자들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하늘을 거역하여 행하며 하나님과 적이 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교도관의 참혹한 학대를 겪고서 저는 늘 몹시 분노하였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비통하고 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이 대체 어떤 법을 어겼단 말인가?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며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걷는데 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사람은 하나님 손의 피조물이니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은 본래 당연한 일인데 중공 정부가 무슨 이유로 함부로 가로막고 백방으로 박해하는가? 분명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하늘을 거역하여 행하며 곳곳에서 하나님과 맞서면서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반동의 죄를 덮어씌우고는 심하게 박해하고 학대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을 일망타진하고 몰살하려고 시도하는데, 이것이 흑백을 전도하고 극도로 반동적이 아닌가?’ 그것이 이렇게 미친 듯이 하늘에 대항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데, 최종에 꼭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패괴가 있는 곳에 꼭 심판이 있게 마련이고 죄악이 있는 곳에 꼭 형벌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섭리이니 아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공 정부는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 하나님께 훼멸되고 재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이 흑암한 사회에 대해 하나님은 일찍이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여 이를 갈며 두 발로 이 극악무도한 옛 뱀을 짓밟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으로 하여금 영원히 해방받지 못하게 하고 더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며 그것의 과거를 용납할 수 없고 더는 사람을 속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역대 이래의 죄업을 다 하나씩 그것과 청산한다. 하나님은 절대 이 괴수를 놓아주지 않고 철저히 멸절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에서 발췌)


  이 마귀 감옥에서 저는 교도관의 눈에 주인없는 한 마리 개보다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때리고 욕할 뿐만 아니라 저의 이부자리와 개인 소유 물품도 자주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그 교도관들에게 뒤집혀 완전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어떤 폭동 같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감옥의 정치 관리자가 저를 찾아와 이런 일에 대한 관점을 꼬치꼬치 따져 물었고 또한 끊임없이 저에게 왜 하나님 믿는 길을 가야 하냐고 꾸짖었습니다. 매번 이런 심문에 직면할 때마다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습니다. 그들이 또 저에게 어떤 악랄한 수단을 쓸지 몰라 속으로 늘 하나님께 기도하여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날마다, 해마다 이런 각종 학대, 박탈, 탄압에 저는 시달림을 받아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과다한 노동 임무와 지루한 정치 임무, 그리고 질병의 고통, 게다가 장기간의 정신적 억압……이런 것들은 저를 거의 무너질 직전에 이르게 했습니다. 특히 한 중년 죄수가 악질 경찰의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견딜 수 없어 밤중에 창문에 목매달아 죽고, 다른 한 나이 든 죄수도 치료가 늦어져 감옥에서 죽은 것을 본 후 저는 또다시 질식할 것 같은 궁지에 빠졌고 또 죽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는데, 죽음이 가장 좋은 해탈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고통을 참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루한 형기를 생각하면 자유를 얻는 것이 그토록 기약도 없이 아득한 것 같아 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정말 견딜 수 없음을 느꼈고 정말로 아직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깊은 밤 이불 속에서 저는 수없이 남몰래 흐느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면서 마음속의 고충을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고통스럽고 무력함을 느낄 때 저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참으신 것이 생각났고, 오늘 거룩하고 무고하신 하나님께서 재차 말씀이 육신 되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저버림, 훼방, 모독, 핍박의 고통을 참으신 것도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무고한 분이시니 본래 이런 고통을 받으시지 말아야 했지만 우리 패괴된 이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제 자신이 패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 고통받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이고 또한 반드시 받아야 할 고통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저는 고통스러운 줄 몰랐고 오히려 제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받고 옥살이하고 구원받기 위해 고통받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의의있는 일이고 이 고통을 받는 것이 아주 가치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슬픔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경력 시가 ≪헛살지 않으리≫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헛살지 않으리 힘들어도 의의있네. 헛살지 않으리 어려워도 후퇴하지 않네. 헛살지 않으리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를 얻었네. 헛살지 않으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위해 바칠 수 있네. 누가 우리보다 복이 있고 누가 우리보다 운이 좋은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역대를 초과하니 하나님 위해 살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큰 사랑에 보답해야 하리” 저는 속으로 반복하며 흥얼거렸는데 부를수록 마음속에 격려를 얻었고 부를수록 힘이 생기고 누림이 있음을 느꼈으며 저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저에게 또 살아갈 믿음과 용기가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로 하여금 당신이 확실히 제 생명의 주인이시고 힘이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저는 악마의 소굴에 빠졌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줄곧 저를 동반하셔서 이 흑암한 날을 보내게 하셨고 한번 또 한번 저에게 믿음을 주셨으며 살아갈 동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나가서 자유롭게 살 날이 있다면 저는 계속 본분을 할 것이고 다시는 당신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저 자신을 위해 생각하지도 않겠습니다. 하나님, 앞으로의 날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렵든지 저는 당신을 의지하면서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감옥에서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던 날들을 자주 회상했는데, 그때가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도 있고 논쟁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본분을 할 때 대충대충 하여 속인 것을 회상할 때마다 저는 너무나 가책과 빚짐을 느꼈습니다. 저의 오만한 본성으로 인해 형제자매들과 논쟁하던 일을 생각하면 아주 괴롭고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온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속으로 경력 시가를 불렀습니다. “나는 정말 후회하네 얼마나 많은 좋은 시절 잃었는지. 흘러간 시간은 오지 않고 후회만 남았네. ……이전의 잘못을 오늘 메우고 신심 가득히 다시 시작하네. 하나님이 기회 주시고 재차 관용하시니 나는 다시 한번 선택하리.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바쳐 마지막으로 한번 하나님을 만족케 하리. 하나님 마음 조급하시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니 더는 하나님 마음을 저버릴 수 없네.” 고통과 자책 속에서 저는 늘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정말 당신께 너무 많이 빚졌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당신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나간 후에도 저는 본분을 하길 원하고 다시 시작해 이전의 빚짐을 메우길 원합니다!’ 감옥에서 저는 전에 늘 함께 지내던 그 형제자매들이 매우 그리웠고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마귀 감옥에 갇혀 있어 이 소원은 늘 지나친 욕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꿈 속에서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고 함께 진리를 교통했는데 꿈이었지만 그토록 즐겁고 기뻤습니다……


  2008년 원촨(汶川) 대지진이 있었던 그해, 제가 갇혀있던 감옥도 흔들렸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났었습니다. 한동안 여진이 끊이지 않아 죄수와 교도관 모두 질겁하여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아주 차분했고 든든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응한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이 내려온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 년 이래의 그 대지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줄곧 저의 마음을 보호해주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생사존망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저로 하여금 괴로움을 느끼게 한 것은 만약 제가 죽으면 더 이상 조물주를 위해 본분을 할 기회가 없고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기회가 없으며 더 이상 형제자매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줄곧 저와 함께하시면서 크게 보호해주셔서 대지진 중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평안히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2011년 1월, 저는 앞당겨 석방되어 끝내 노예같은 감방 생활을 마쳤습니다. 자유를 얻은 저의 마음은 몹시 흥분되었습니다. ‘또 교회로 돌아갈 수 있다! 또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저는 흥분된 심정을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후 저에게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친척, 친구들도 다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보면서 멀리 피하고 저와 왕래하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들마저도 다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비록 감옥의 그런 학대와 괴롭힘은 없었지만 이런 냉대, 비웃음, 저버림은 더욱 참기 어려워 저는 나약해지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날들을 하나하나 회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이 생긴 그해 저는 겨우 31살이었는데 감옥에서 나올 때는 이미 39살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9번의 겨울, 8번의 여름을 보냈습니다. 제가 외롭고 무력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인사물(人事物)을 배설하셔서 저를 도와주셨고, 제가 고통스럽고 절망에 빠졌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주셨으며, 제가 죽으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또 저에게 힘을 주셔서 살아갈 용기가 있게 하셨습니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에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셔서 한걸음씩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걸어나와 굳세게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요만한 고통에 직면하여 소극적이 되고 나약해지고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저는 정말 나약하고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소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더욱더 질책을 받았고 저도 모르게 감옥에서 하나님께 맹세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에게 나가서 자유롭게 살 날이 있다면 저는 계속 본분을 할 것이고 다시는 당신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지 않고 다시는 제 자신을 위해 생각하지도 않겠습니다!’ 이 맹세를 생각하고 그때 하나님께 맹세하던 때를 회상하니 눈물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저는 천천히 하나님 말씀 시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제 자신이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저를 버리시려 해도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원하시든 않든 저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할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도 꼭 하나님을 얻고 평생의 정력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원하고 저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일생 동안 따르고,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절대로 그만두지 않겠습니다. 이후에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을 더 잘 만족케 하고 하나님을 따라 길 끝까지 가려면 지금 반드시 기초를 잘 다져야 하고 매사에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케 하고 하나님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늘 이렇게 실행하면 안에 토대가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시련이 임하면 고통을 좀 받을 것이고 어느 정도 슬플 것이며 죽고 싶을 정도로 비통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며, 하나님이 어떻게 시련하시든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달갑게 참는다.』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에서 발췌)


  한동안의 영적 수양과 조정을 거쳐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 하에 저는 소극적인 가운데서 나와 본분을 하는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비록 저의 인생 중에서 가장 좋은 청춘 시절은 모두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7년 4개월 간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지만 저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고통을 받는 것이 너무나 의의있고 가치있고 이것이 저에 대한 하나님의 파격적인 높여주심과 은총이며 제가 다행히 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친척과 친구들이 다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딸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인사물도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 없습니다. 설사 죽더라도 저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티없이 순진한 사랑≫은 제가 옥중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오늘 저는 저의 실제 행동으로 가장 순결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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